시하다 56

어른시절

사람들은 어린시절 어린시절 하면서 추억을 떠올리는데 왜 어른시절이란 말은 없는 걸까 아직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아서 일까 하긴 먹고살기 힘든 어른들에게 추억 만들기란 사치일 수도 있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수한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빼 먹어 더 이상 소중한 추억을 못 만드는 것일까 아님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서 세상을 다 알아채 버려서 일까 어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시절의 추억을 한 장 한 장 꺼내며 사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어른들에게도 좋은 시절 있나니 어른시절

카테고리 없음 2023.04.30

비상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상상을 하곤 했지 하지만 언제나 상상에 그치고 말았어 2종 보통 운전면허도 있는데 말이야 그것도 삼십 년 넘게 무사고 경력자인데도 난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이젠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가 되었지 세상 밖으로 질주할 때가 되었지 속도 자유 맨몸으로 맞이하는 바람 용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습의 틀을 깨고 내가 안주하던 공간을 박차고 나와 깨지고 부서져도 바람을 가르며 세상을 향해 비상 꿈

카테고리 없음 2023.04.29

그녀

그녀 뒤를 따라서 걸어가 보았습니다 누가 보면 스토커인 줄 알겠어요 우연히 걸어가는 방향이 같아 어쩔 수 없이 제가 뒤에서 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뒤따라가는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아무튼 앞지를 수도 있을지는 몰랐지만 계속 그녀를 따라서 아니 그녀 뒤에서 걸어갔습니다 뒤에서 따라갈 때까지는 동화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거의 다 따라왔는데 그녀가 흡연장소로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동화 속에는 이런 얘기가 없었는데 어쨌든 담배를 피우고 그것도 발로 비벼서 끄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뒤따라 온 걸 안 것일까요 동화 속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4.28

동전 소리

딸그락 딸그락 어떤 영감이 내 앞에서 커다란 비닐봉다리에 빈 캔들을 가득 담아 지나간다 내 추측으로는 신도림역에서 밤을 쫓던 사람들이 마신 거리의 흔적들을 새벽을 틈 타 수거하여 오는 듯하다 어라 저기 앞에서도 떨그럭 떨그럭 빈 캔들을 모아서 들고 오는 영감이 있다 혹시 저분은 영등포역에서 수거해서 오는 것일까 나를 사이에 두고 두 분이 할끗 마주 보며 스쳐가는 차마 마음 약해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묘한 광경이 연출된다 두 분은 서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디서 수집했는지 궁금해할까! 자신의 생계에 경쟁자라 생각하고 미워할까? 오늘따라 내 발걸음이 가벼이 나아가지 못한다 앞서가는 영감의 표정을 보랴 지나가는 영감의 뒷모습을 보랴 뒤틀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찌그러진 동전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내 뒤를 따라오..

카테고리 없음 2023.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