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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롤화장지를 걸며

돌돌 말린 두루마리 롤화장지를 건다 새것.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새로 걸어 놓은 두루마리 롤화장지를 바라보며 '새로 바꿨으니 양이 많아서 오래 사용하겠지'라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 좋은 마음에 흠뻑 빠져본다 처음엔 내 인생도 그렇게 시작했지 기분 좋은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해 놓고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고 계획도 없이 아무렇게나 휙휙 잡아당겨 쓰고 있었지 쓸데없이 길게 잡아당겨 사용하기도 하고 사용하다 남아도 아무렇지 않은 듯 버리고 몇 겹이면 될 걸 수십 겹씩 사용하기도 하고, 갑자기 얼마 남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지더라 수십 겹 사용했던 곳에도 몇 겹만 사용하고 사용하다 남은 조각도 버리지 않고 놔뒀다가 다시 사용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아껴서 사용하게 되더라 무한할 줄 알았던 인생길 롤...

카테고리 없음 2024.06.13

결혼하지 말 걸

너를 선택한 건 나의 욕심이었나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았는데. 왜 부질없이 네 인생에 관여했을까 너는 지금 어느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있니 내가 보이지 않는 공간 속으로, 혹여 우리 다시 마주친다면 그냥 설렘으로만 지나치자 너는 열차 안으로 나는 역사 밖으로 지하철을 따라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환영처럼 너는 고객 나는 직원으로 번호표를 통해 대면하기 직전까지의 기다림이 주는 잠깐의 떨림으로만 기억하자 먼 옛날 너는 공주로 나는 호위무사로 애틋하게 서로의 안위만을 걱정해 준 것처럼, #시 #시집 #시인 #한천희 #결혼 #이혼 #연습

카테고리 없음 2024.06.12

당신의 하루가 죽으면 당신은 0.002739726 만큼 더 살아요

하루하루 살아가려면 매일매일 먹어야 해요 당신은 하루를 살려고 오늘도 마트에 가요 고기도 먹고 수박도 먹고 생선도 먹고 계란도 먹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당신이 하루를 먹으면 당신의 하루는 죽어요 당신은 하루를 살기 위해 먹은 것인데 왜 당신의 하루는 죽어야만 하는 거죠 먹고 먹히는 사슬, 하루를 먹어야 하루를 사는데 하루를 먹으면 하루가 죽어요 당신의 하루는 눈앞에서 사라져 마이너스 되는데 당신이 지내 온 하루들의 합은 플러스가 됩니다 하루에 0.002739726 만큼씩, 100세 동안 하루를 먹어 치운 사람은 대체 하루를 얼마나 죽이며 살아온 거죠 #시 #시집 #시인 #한천희 #하루 (시작노트 - 지난주에 마트에 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먹거리를 사러 마트에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

카테고리 없음 2024.06.11

감의 낙과

툭~ 아야 길바닥에 떨어진 너를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며 그냥 지나쳐갈 때는 몰랐어 비바람을 견디며 나무에 매달려 있기가 힘들어서 차라리 떨어지는 줄 알았어 가을까지 기다려도 살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워 생을 포기하고 스스로 뛰어내리는 줄 알았어 오늘 너와 어깨빵을 하고서야 알았어 살고 싶은 네 생의 의지를 내 어깨의 아픔보다 강한 너의 삶의 의지를 #시 #시집 #시인 #한천희 #감의 #낙과 #생명 #삶 #의지 (아침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가 사진은 네이버에서 퍼 와 편집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6.02

어땠을까(1)

번호표 뽑아 놓고 오래 기다린다고 육두문자 입에 물고 화를 내고 가신 님 그땐 어땠을까 지금쯤 화는 풀렸을까 '사정해서 먼저 좀 처리해 달라고 부탁할걸, 괜히 화냈나'라고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님 나한테 화낸 게 미안해서 하루 종일 마음 쓰고 있지는 않을까! 손님이 데려간 번호표에 내 마음도 따라 갔나 보다 #시 #시집 #시인 #한천희 #번호표 #고객 #손님 #직원 #마음

카테고리 없음 2024.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