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5

지하철의 짧은 만남도 인연일까

지하철이 아니면, 버스가 아니면 내가 감히 언감생심 모르는 여인의 옆자리에 않을 수 있겠는가 인연이라 하기엔 너무 짧고 모른척하기엔 하루 종일 두근거린다 옆자리에 앉은 여인이 피곤했는지 왼쪽으로 기웃 오른쪽으로 기웃 몸이 그네를 탄다 내 그네에 닿으면 모른 척 기대주고 싶었는데 나의 속 마음을 알았는지 화들짝 눈을 떠 부리나케 내린다 다음 역 문이 열리자 사십이 명 정도 앉아 있는 객실에서 필연인 양 내 앞을 선택해서 마주한 여인 얼굴은 쳐다보지 못하고 그 여인의 윤곽 중 삼분의 일 아래로만 나의 시선이 머뭇거린다 바지의 주름과 마주치니 세탁소에서 찾아왔을 때 옷걸이에 걸쳤던 접힌 흔적이 남아있다 세세한 부분의 디테일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성격은 소탈하고 깔끔할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카테고리 없음 2024.09.08

번호표

번호표를 보면 그 사람 인생의 굴곡이 보인다 어떤 이는 순번이 2번째였는데 30분을 넘게 기다려서 업무를 보고 어떤 이는 순번이 7번째였는데 5분도 안 기다리다 업무를 보고 간다 어떤 이는 대기 고객이 한 명도 없어 오자마자 번호표도 안 뽑고 일 처리를 하고 간다 잘 풀리는 인생 인연인가 꼬이는 인생 업보인가 #시 #시집 #시인 #한천희 #은행 #번호표 #인생 #인연 #업보

카테고리 없음 2024.05.02

첫사랑 키오스크

오늘은 친구들과 남산 둘레길을 걷기로 한 날입니다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4호선 회현역에 내려 만나기로 한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아, 오늘 처음 운명처럼 당신을 마주했습니다 혼자였으면 부끄러워 돌아갔을 텐데, 네모반듯한 외모에 수개의 처방전을 간직한 마음, 첫사랑이라 선뜻 말도 못 걸고 곁눈질로 당신만 바라보며 친구가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만 했습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도 우리의 첫 만남이 당신의 모습과 함께 걸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예정된 숙명의 얼굴 인양하고 당신을 또 보려고 하니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아침의 기억을 더듬으며 당신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순서를 기억해 보았습니다 막상 단둘이서만 마주하게 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합니..

카테고리 없음 202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