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에는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아 아버님 성묘 차 공원묘지에 다녀 오기 위해 12시에 퇴근하자마자 간단히 점심을 먹고 본가에 들러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제 자동차는 전기 자동차라 계절마다 다르긴 하지만 요즘 같은 경우는 100% 충전하면 주행 가능 거리가 232킬로 정도 됩니다
공원묘지까지가 88킬로인것을 감안하면 에어컨을 켜더라도 중간에 충전없이 한 번에 다녀올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에어컨을 켰다가 잠시 끄기도 하고 더우면 창문을 열고 달리기도 하여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주행 가능 거리가 110킬로 정도남아 충전을 하지 않고서도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올 때도 거의 에어컨을 끄고 더우면 창문을 열고 왔습니다
걱정과 우려 속에 드디어 어머님 댁에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주행 가능 거리가 16 킬로 정도남아있어 이 정도면 엄마네 집에서 우리 집까지 9킬로 정도라 충전을 안 해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별 생각 없이 저녁을 먹고 어머님 댁을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계기판의 주행 가능 거리 표시가 사라 지더니 거북이 모양의 경고등(파워다운 경고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거북이 모양의 경고등이 깜빡거려도 5킬로 정도는 주행한 기억이 있어 집에 도착해서도 내일 회사에 출근해서 지하주차장에서 충전하면 될 것 같아 별 생각없이 없이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회사까지는 3킬로도 안되는 거리라 거북이 모양의 경고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집근처에서 충전을 하지 않고 출근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잘나가던 자동차가 갑자기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전기차를 탄 이후로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전기차를 타다가 자동차가 방전돼서 멈춘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조금만, 조금만,
수없이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오르막길까지는 자동차가 움직여서 내리막길은 수동으로 내려갔는데 회사 주차장까지 300m 정도를 남겨두고 드디어 자동차가 멈춰 섰습니다
급기야 회사에 전화해서 좀 늦는다고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보험 회사에 전화해서 견인 요청을 하고 비에 젖은 채로 자동차 안에서 기다리는데 밖에는 비도 오고 출근도 못하는 제 신세가 처량해졌습니다
중요한 건 견인차는 지하주차장을 들어갈 수가 없어 회사를 300미터 앞에 두고 더 먼 거리에 있는 견인차가 진입 가능한 도로변의 충전소를 찾아갔는데 설상가상 충전기는 1대인데 다른 자동차가 충전 중이었습니다
제가 급한 상황이다 보니 앞뒤 상황 가리지 않고 충전 중인 차주에게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부탁했더니 그 차주는 고맙게도 내 요구를 들어 주었습니다
회사 지하 주차장에 충전소가 있어 회사까지 이동할 정도만 10분 정도 충전을 해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시동이 안 걸려 자동차 키를 찾는데 그제야 자동차 키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스쳐가는 불안한 생각에 견인차 운전수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견인차 운전수는 자동차 키를 가지고 저한테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날은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처럼 다양한 시그널(메시지)을 보내줍니다
우리는 무심코 이런 시그널을 무시하며 살아가다 더 큰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도 시가 아닌 긴 글을 쓸 수 있다는 하나의 수확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