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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시를 쓰니 시인이 된다 2024. 9. 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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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를 손질하기 위해 포장 박스를 튿었습니다
톱밥 속에서 모래인 줄 알고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녀석들

한 마리씩 꺼내려고 집게로 건드리니
이방인의 침입에 집게발로 위협하며 무섭게 달려듭니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인데 사람들이 녀석들을 공격자로 둔갑시켰습니다

종이로 감싸기 시작하자 갑자기 몸놀림이 차분해지고 표정이 시무룩해집니다

고향 바다로 돌아온 줄 알고 잠을 청하려는 건지,

죽음의 시간을 감지하고 체념하는 건지.

나는 연신 '얘들아 미안하다'라는 소리와 함께
종이로 감싼 녀석들을 비닐봉지에 넣고 묶어 아내에게 건네줍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영혼들이 냉동실로 들어갑니다

어둡고 차가운 곳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다
냉동으로 잠이 들 꽃게들의 눈망울 아래로 물거품이 일어납니다

나는 자꾸만 '얘들아 미안하다 미안하다'라며 죄인처럼 냉동실 앞을 서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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